양재시민의숲 5번출구 앞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윤박사님께서 예전 가나 사업의 초청연수 진행 중에 한번 다녀온 적 있다고 하시면서 추천하시기에
모임장소로 정해져서 다녀왔다.
의사의 생애별 업적과 어록, 기록물이 잘 보존되어있어 관람하기가 매우 편했다.
윤봉길의사는 독립운동만 하신게 아니라,
농민들의 가난한 삶을 일으키기워해 야학, 농촌에서 농민교육과 농사교육에까지 앞장서셨다.
농민에게 돼지 한마리를 무상대여하고 새끼를 낳으면 새끼는 주고 어미는 다시 반납받는 돼지은행도,
농촌공동구매 협동조합운동도 하셨다.
그러던 중 독립운동을 결심.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丈夫出家生不還) 글을 남기며 만주를 거쳐 상하이로 떠난다.
그리고 만난 김구을 만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도모.
1932.4.29.
홍커우공원에서 열리게된 상하이 전승기념행사에서
주요 일본 인사들에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던져 거사에 성공하게된다.
거사로 인해 전 세계는 일제탄압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고, 특히 중국 장제스주석의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카이로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해 관철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오며.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의 역사는 짧았지만 한결같은 조국에 대한 책임감과 행동,
그리고 위인이 되긴엔 아직 푸르른 25세 청춘의 숭고한 희생은 의인으로서 우러러 존경하기에 마땅하다.
윤박사님은 가나 초청연수생들도 식민지 시대의 자신들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인으로 모시고 추모하는 한국의 문화도 멋지다고 했다고 한다.
10여년전 근무했던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자국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한번도 지배받지 않았다는 자부심과
커피, 전통 노래와 춤, 부족 문화 유산 등 고유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우리시대에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애국심이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대척되는 가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애국심이 어쩌면 국가 발전에는 상당히 필요한 마인드셋이 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값짐을 다시 한번 감사히 여기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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