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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현장/파나이@필리핀

노가다

by 지나파크 2015. 8. 10.


울 아부지는 노가다이다.

전기기술자인 데 아빠가 그냥 쉽게 "우리 노가다는~" 이런 표현을 쓰시니 나도 그려려니 한다. 
큰 건물이면 10층 미만의 건물정도, 나이가 들어가시면서 개인주택들 보수공사를 주로 하시는 데
며칠, 길면 몇 달 공사를 하러 다니신다.

내가 어릴 땐 큰 공사를 하느라 한 두명 기사아저씨들이나 총각들이랑 같이 일했다. 
현장이 멀땐 같이 출근하느라 기사아저씨들이 울집에 오곤 했는 데, 
난 부시시한 몰골로 인사하는 것도, 아저씨들 있는 마루를 지나가기 불편해서 싫었지만... 
아빠한테 박사장님~ 박사장님~ 하는 게 듣기좋기도 했다.

저녁에 아부지는 7시 10분이나 40분 사이정도에 들어왔다.
일일연속극을 보며 밥을 먹었다. 9시 뉴스를 보면서 과일을 먹었다. 
9시 15분쯤 되었을 때 가끔 아버진 커다란 푸른색 표지의 도면을 펼쳤다. 
콤파스랑 도면용 두꺼운 심이 들어있는 특별한 파란색 샤프를 쥐고 이리 저리 들여다보는 아버지 모습도 좋았다.

아빠가 일끝나면 샤프를 가져다가 학교에서 썼다. 
애들도 신기해했다. 난 그렇게 특별한 게 좋았다.

아빠가 최근 몇 년간 강남 미용실 공사를 한 적이 있다. 오가는 연예인들, 그냥 요즘 애들얘기, 
특히 다들 하나같이 커피를 들고 다닌다고 웃기다고 하셨다. 그 비싼 걸 왜먹는거냐고 ㅋㅋㅋ

아빠가 여름에 일하는 건 증~~~말 덥다고했다. 
땀에 먼지를 뒤집어쓰니 몰골은 말이 아니라고 했다. 
럼에도 아부지는 항상 깔끔하게 집에 들어왔다. 현장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들어오셨다. 

생각해보니 아침마다 작업복과 수건을 챙겨나갔고, 
저녁에 올땐 꼭 현관에서 엄마를 막 불러서 작업복받아가게했다. ㅋㅋㅋ 
직접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있었는 데 그러지 않은 이유는... 누굴 시키는 것도 
아빠를 현관까지 마중나가는 것도 좋아서 시키신 거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쨋든 이 시기엔 아빠랑 '강남 미용실'이란 그나마 나한테 친숙한 소재가 있어서 
아빠 일얘기를 좀 히곤 했다. 

하루는 아빠랑 팀아저씨들 한 10명정도가 큰 도면을 보면서 회의장소가 필요해서 스벅에 갔단다. 마침 긴 테이블이 있는 곳이 거기뿐이였는 데 거기 한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아저씨 중 누가 "아가씨 미안한데 다른 데로 옮겨주면 안될까?" 하고 물어보자 
아가씨 대답 "싫은데요"
아저씨들은 결국 테이블 몇개를 붙여서 구석에 옹기종기 불편하게 회의를 했다.

"못된년! 아빠 그런애는 싸가지없는 애야. 요즘애들이 다 그렇진 않아"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공사현장이란 게 딱히 쉴데가 없으니 구석에 모여 앉아서 쉬는 데, 지나가는 강남언니들이 
힐긋힐긋 쳐다보거나 누구는 싫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갔다고 했나...... 

에라이 나쁜 년들. 욕이 나왔다.

그러면서 문득 나도 혹시 그런 적 없을까.. 싶었다.
물론 아버지가 노가다를 하니 건설현장이야 친근했는 데~
길 가다 판촉하는 사람들이 귀찮게 굴면 많이 싸늘하게 쳐다봤던 거 같다... 우즈벡에선 따라붙는 거지소녀들을 너무 매몰차게 대했는 데.. 내가 무슨 권리로 다른 사람을 무시했는 지 반성이 든다.

그래서 결국은 아부지가 보고싶다.
내가 있는 필리핀 일로일로에 제일 좋은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들어와서 
주황색 안전모를 내려놓고 커피한잔 하는 아저씨들 무리가 아버지를 보고싶게 한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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